직접 부딪혀 보지 않으면 절대 떠오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생각들이 있다.
어제 제로투원 북클럽 첫 시간은 딱 그런 시간이었다.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읽는 방식 자체를 잠깐 멈춰 세우고 다시 보게 만드는 시간.
이 낯설고, 다소 엇박인 정지 상태를 하나의 근사한 흐름으로 이어 붙인 건 뜬금 없겠지만 ‘디제잉’이었다.
좋은 DJ는 흐름을 설계한다.
곡과 곡 사이, 비트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스러움과 대담함, 그리고 예상을 깨는 의외성을 오가며 청자의 감탄을 끌어낸다.
그리고 여기에 또다른 방식의 디제잉이 있다.
지식의 향연 중간중간 날카로운 질문을 끼워 넣으며 자연스럽게 청자의 사고를 확장, 전환시키는 지식 디제잉.
스스로를 Knowledge DJ라고 소개하신 유월 님의 3시간 40분에 걸친 디제잉을 정리해 보았다.
오프닝, 자기 소개
첫 시간답게 가볍게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다.
이미 창업을 해본 분도 있었고, AI나 소프트웨어, 사업기획, 마케팅, 조직문화, 외식업 데이터 같은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분들이 모였다.
흥미로웠던 건 업은 달라도 다들 “뭔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이는 즉 다들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설계하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 북클럽이 좋았던 건 여기서부터였다.
단순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자기 현실 안에서 이 책을 시험해보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내용이 추상적인 철학으로만 수렴하지 않는다.
각자의 고민을 풀어내려는 실질적인 “몸부림”이 있기 때문이다.
제로투원의 첫 문장: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어제 가장 강하게 남은 문장은 이거였다.
특히 규모의 경제가 압도적인 임팩트를 갖는 제조업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에 와 닿는 느낌이 퍽 무겁다.
중국산 이차전지 배터리가 쏟아지면서 시장 전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눈 앞에서 지켜봤던 입장에선 씁쓸한 만큼 교훈도 남다르다.
제로투원
경쟁은 이윤을 파괴하고, 독점은 혁신과 이윤을 만든다.
보통 우리는 경쟁을 건강한 것으로 배운다.
열심히 비교하고, 더 빨리 개선하고, 조금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로투원은 이 전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다들 비슷해진다.
비슷해질수록 차별성은 사라진다.
차별성이 사라질수록 결국 가격이나 효율 싸움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는 오래 버텨도 크게 남기기 어렵다.
반대로 독점은, 남들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상태다.
이건 단순히 시장을 많이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애초에 비교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상태에 가깝다.
0에서 1로 간다는 것
이번 시간 내내 반복된 건 “0 to 1″과 “1 to n”의 차이였다.
- 0 to 1은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다.
- 1 to n은 이미 있는 것을 복제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전자는 수직적 진보다.
후자는 수평적 진보다.
그리고 책은 분명하게 말한다.
진짜 중요한 건 1에서 n으로 가는 확장이 아니라, 0에서 1을 만드는 순간이다.
그 전환이 없으면 이후의 확장은 결국 복제에 불과하다.
여기서 기술의 정의도 인상적이었다.
기술은 꼭 거대한 공학만 뜻하지 않는다.
“새롭고 더 나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 이면 그게 기술이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제로투원
미래는 시간이 흐른다고 오는 게 아니다. 설계해야 한다.
우리는 자꾸 시간을 미래로 착각한다.
1년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고,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낙수 효과 마냥 내 자리도 생길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어제 이야기의 결은 완전히 반대였다.
시간은 그냥 흐른다.
달라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설계를 한 사람의 결과다.
유월 님
“당신이 1년 전과 현재 하는 일에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1년 전에 살고 있는 것이고,
당신이 10년 전에 하던 일을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다면 당신은 10년 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유월 님은 이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비교하셨다.
크로노스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선형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어떤 결정이 의미를 획득하는 ‘결정적 순간’에 가깝다.
같은 1분이라도 그냥 흘러가는 1분이 있고, 방향을 바꿔버리는 1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 차이를 모르고 다만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다면 시대의 격류에 떠밀려 표류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

카이로스(기회, 결정적 순간)는 앞머리만 길고 뒤는 벗겨진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다가올 때는 붙잡을 수 있지만, 지나가고 나면 뒤에서는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래”는 캘린더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질문 안에 있다.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남들과 다르게 갈 것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작은 독점을 만들 것인가.
퍼스트 프린시플,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는 힘
일론 머스크 덕에 많이 알려진 First Principles는,
비유나 관행에서 출발하지 않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원리에서 다시 출발하는 사고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보는 대신, 이 문제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사실이 무엇인지, 절대 바뀌지 않는 조건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묻는다.
그래서 First Principles 사고는 늘 불편하다.
“원래 이 업계는 그래”라는 말을 바로 못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용, 구조, 물리, 수요, 제약조건 같은 기초 단위까지 분해한 뒤 다시 조합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고, 익숙한 답도 잘 안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남들이 복제하지 못하는 해답이 나오기도 한다.
일론 머스크의 로켓 이야기가 자주 예시로 나오는 이유도 같다.
로켓은 원래 비싼 물건이라고 받아들이는 대신, 재료비는 얼마인지, 어떤 부품이 진짜 비싼지, 회수와 재사용이 가능한지로 다시 쪼개서 본 것이다.
관행을 답으로 두지 않고 원리를 다시 묻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설계가 가능해진다.
익숙한 관성대로 보는 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단위까지 분해해서 다시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 사고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대부분 이미 받아들인 전제 위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 다들 이렇게 하니까
- 시장에서는 원래 이렇게 하니까
-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 조금 더 잘하면 되니까
그런데 제로투원은 오히려 이런 전제들을 의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질문이 바로 이 책의 핵심 질문이다.
제로투원 — 핵심 질문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은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멋있어 보이려는 허세의 산물이 아니다.
사업이든 커리어든 결국 여기서 갈라진다.
다들 동의하는 답 안에서는 포화된 경쟁만 남고, 남들이 아직 동의하지 않는 진실 안에서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독점 기업의 조건
독점은 운 좋게 선점한 자리가 아니라, 강력한 진입장벽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어제 논의한 독점 기업의 네 가지 요소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가 설계해야 할 ‘무너지지 않는 성벽’의 설계도와 같았다.
| 요소 | 핵심 | 사례 |
|---|---|---|
| 독점 기술 | 2등보다 최소 10배 뛰어난 압도적 격차 | ASML의 EUV 기술력 |
| 네트워크 효과 | 사용자가 늘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 카카오톡 |
| 규모의 경제 | 생산량 증가에 따른 단위 비용 감소 | 아마존의 물류 인프라 |
| 브랜드 | 대체 불가능한 감성적 정체성 | 애플 |
어제 참여자들이 예시로 얘기했던 SpaceX, NVIDIA, ASML 같은 기업들이 강력한 이유는 이 네 가지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에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시장의 규칙을 직접 씀으로써 경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무력화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이 만든 공식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비즈니스 안에서 어떤 성벽을 먼저 쌓기 시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1999년 닷컴 버블에서 배워야 하는 것
보통 닷컴 버블 이후 사람들이 얻은 교훈은 이런 식이다.
| 통념 | 피터 틸의 반론 |
|---|---|
|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 사소하게 가느니 대담하게 가는 게 낫다 |
| 가볍고 유연해야 한다 | 나쁜 계획도 무계획보다 낫다 |
| 경쟁자보다 조금만 잘하면 된다 | 경쟁은 시장의 이윤을 파괴한다 |
| 제품만 좋으면 된다 | 판매는 제품만큼 중요하다 |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트업 문법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애자일, 린, 유연함, 빠른 개선. 다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프레임이 항상 0에서 1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1에서 n만 반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 또한 숨어 있다.
책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
중간중간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내용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미 작은 니치에서 시작해 차별화를 쌓아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선택만 반복해온 자기 패턴을 봤고,
누군가는 “더 나은 것”은 자주 찾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은 잘 못 찾았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로투원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정보가 어려워서라기보다, 기존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사고방식을 흔든다.
익숙하게 붙잡고 있던 상식이 자꾸 무력화되니 인지 부조화가 올 법도 하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시프트
토머스 쿤(Thomas Kuhn)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이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발전한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실제로는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 현상이 쌓이고, 위기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제로투원이 말하는 구조는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 시프트와 꽤나 닮아 있다.
1에서 n으로의 확장은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가깝다. 규칙을 따르고, 효율을 높이고, 빈칸을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반면 0에서 1로의 전환은 패러다임 시프트 그 자체다. 기존의 규칙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인식하고, 완전히 다른 프레임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로투원이 불편한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기존 체계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까지 잘 작동하던 렌즈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이 자꾸 거슬리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게 정확히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질문들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간 전체가 사실 다음 장을 읽어 나가기 위한 예열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떠한가?’라는 성찰 없이 이 책을 읽는 건 밑 빠진 잔에 고급 위스키를 들이붓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 전까지 붙들어볼 질문들
- 나는 지금 더 나은 것을 만들고 있는가,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고 있는가?
- 나는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가, 설계하고 있는가?
- 내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전제는 무엇인가?
- 나는 평균을 선택해서 안심하고 있는가?
-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일 안에서 작은 독점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는가?
마무리
어제 북클럽은 책 내용을 “이해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이 책을 어떤 태도로 읽어야 하는지 배운 시간에 더 가까웠다.
유월 님이 말씀하신 ‘이해하고 나서 해보는 게 아니라, 해보면서 이해하게 되는 영역이 있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제로투원은 아마 그런 책 같다.
읽고 동의하며 머리를 끄덕이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서 불편함에 얼굴을 찡그려야 하는 책.
그리고 그 불편함 안에서 내가 당연하게 믿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책.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기꺼이 불편해질 결심을 한다.
남은 시간들 동안, 뇌를 단단히 감싸고 있던 상식이란 껍질을 얼마나 깰 수 있을까 기대한다.
그건 아마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픔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나의 ‘카이로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